집 앞 초록색 옷 수거함을 보며 들었던 찝찝함

집 앞 초록색 옷 수거함을 보며 들었던 찝찝함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초록색 철제 상자

이사를 앞두고 짐 정리를 하는데 옷장 깊숙한 곳에서 정체 모를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교 때 입던 후드티, 색이 바랜 청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다시 입자니 민망한 상태의 옷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집 앞 골목길에 놓인 헌 옷 수거함을 떠올렸다. 사실 우리 집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항상 낡은 초록색 수거함이 놓여 있는데, 지나가면서 습관적으로 보기만 했지 막상 내가 직접 옷을 한 보따리 챙겨서 그 앞에 서 본 건 처음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관리가 참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 쪽은 녹이 슬어서 삐걱거리고, 주변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찢어진 가방이랑 젖은 신발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게 공공시설인지 개인 사업자의 사유물인지도 헷갈리는데, 예전 뉴스에서 보니까 대다수가 허가받지 않은 불법 설치물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문득 내가 여기 넣은 옷들이 정말 좋은 곳에 쓰이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단순히 재활용 업체가 수거해서 돈을 벌기 위해 설치한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기부를 위한 창구인 건지 명확한 설명이 없으니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헌 옷 정리보다 더 골치 아팠던 분리수거

옷들을 수거함에 쑤셔 넣고 나니 이제는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 문제였다. 원룸에 살 때는 3단 분리수거함을 썼는데, 이게 이사하려고 보니 처치 곤란이다. 2년 전쯤 인터넷에서 3만 원 정도 주고 산 것 같은데, 플라스틱이라 버리기도 애매하고 중고로 팔자니 냄새가 밴 것 같아서 그냥 버리기로 했다. 사무실 쓰레기통처럼 생긴 간이 분리수거함들도 결국 이사 때가 되면 거대한 폐기물이 된다. 집집마다 쓰레기봉투 거치대를 두고 쓰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도 처음엔 의욕적으로 샀다가 나중에는 그냥 검은 비닐봉지에 쑤셔 넣게 되더라.

분리수거라는 게 참 피곤한 일이다. 특히 아파트 단지에 살 때는 그냥 분류해서 내놓으면 그만인데, 골목길 빌라촌에 사니까 매일 저녁마다 쓰레기봉투 들고 나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짤순이 같은 건 사본 적도 없지만, 종량제 봉투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마다 드는 비용도 은근히 무시할 수 없다. 10리터짜리 봉투가 가격이 얼마더라, 대충 한 장에 400원 정도 했던가. 이사 갈 집에서는 좀 제대로 정리를 해보고 싶은데, 막상 짐을 싸다 보니 버릴 건 더 나오고 분리수거 배출 규칙은 지역마다 다르고 참 머리가 아프다.

수출되는 옷과 남겨진 쓰레기들 사이에서

수거함에 옷을 넣으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예전에는 수거함에 넣으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된다고 믿었는데, 요즘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내가 버린 헌 옷도 누군가에게는 구제 의류 시장의 상품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패스트패션 옷들은 워낙 질이 낮아서 재사용 가치가 없다는 말도 있다. 옷 한 벌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결국 어디에선가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어떤 옷들은 재활용 섬유 패널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던데, 우리가 수거함에 넣는 모든 옷이 그렇게 알뜰하게 쓰일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수거함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선별 단계에서 명품이나 상태 좋은 옷만 따로 골라내고 나머지는 폐기 처리한다는 소문도 있으니 말이다. 수거함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 수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안내문 하나 붙어있지 않은 상황이, 그저 방치된 동네 풍경이랑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사 가는 날까지 미뤄두고 싶은 정리

이사를 며칠 앞두고도 여전히 정리가 안 된 구석들이 있다. 옷은 다 넣었는데, 잡다한 생활 용품들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는다. 그냥 일반 쓰레기봉투에 다 넣어도 될지, 아니면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또 미뤄두게 된다. 옷 수거함 앞을 지나칠 때마다 ‘내가 넣은 옷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이사를 마치고 나면 아마 이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잊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곳에 가면 이번에는 진짜 깔끔하게 살아봐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박스 테이프를 뜯고 짐을 풀기 시작하면 다시 예전처럼 물건들이 쌓이겠지. 쓰레기봉투 거치대도 이번엔 좀 튼튼한 걸로 살지, 아니면 그냥 바닥에 두고 쓸지 결정도 안 섰다. 그냥 대충 살다가 또 다음 이사 때 후회하는 게 내 일상인가 보다. 옷 수거함 앞에 서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돌아오는 길, 골목길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댓글 2
  • 수거함에 옷을 넣는 행위 자체에, 꽤나 많은 과정이 숨어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 수거함에 옷을 수출하는 게 사실인가요? 최근에 봤던 영상에서 개발도상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재활용이라는 이름보다는 단순히 다른 나라로 보내지는 것 같아 좀 생각이 복잡해졌어요.